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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의 단골 아지트
시인들은 어디에서 만나는가?
 
계간 (시인세계)

 

 


제일 왼쪽이 시인세계 발행인인 김종해 시인, 중앙에 머리 벗겨진 분이 조병화 시인, 다방 사슴에서.

 

시인들은 어디에서 만나는가? 시인의 상상력을 길어올리고 창작열을 자극하는 샘물이 있는 곳은 어디인가? 192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시인들이 시적 영감과 삶에 대한 열정을 얻었던, 술이 있고 뿌연 담배연기가 있고 연애와 낭만이 살아 숨쉬던 공간은 어디인가?

시인들이 드나들던 공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시가 되기도 하고 문화가 되기도 하며 정서가 되기도 한다. 많은 시인들은 그들만의 아지트에서 일상에 짓눌려 무뎌진 감각과 혼탁해진 의식을 열정적인 담론과 담배연기와 커피 한 잔으로 정화했다. 술이 주는 안식과 위안 속에서 닫혀 있던 의식을 해방시켜 왔으며 그들만의 아지트에서 섬광같이 번쩍이는 시적 영감을 구해왔다.
 
《시인세계》의 이번 특집은 “시인들의 단골 아지트”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아리스 다방, 은성, 사슴, 낭만에서 인사동의 평화만들기, 실내악, 탑골, 시인학교, 이화, 귀천, 홍대 앞에 위치한 예술가, 곱창전골, 신촌의 은경이네, 그리고 대구, 부산, 광주 시인들의 아지트까지…… 시인들의 낭만적 도취와 시적 열정에 대한 그리움이자, ‘행복한 시쓰기’를 가능케 했던 그들만의 은밀한 소굴의 문을 반쯤 열어본다.  - 편집자 -

 
<총론 1>
문인들의 ‘장소’, 문인들의 ‘공간’ 이야기


                                                    장    석    주

장소는 신체를 떠받드는 물적 기반이다. 레비나스의 말대로 신체가 의식의 출현 그 자체라면 장소는 의식이 움직이고 현현하는 무대다. 장소는 사람을 사물로서의 존재성을 강화하기보다는 “사건의 질서” 그 연쇄로 이끈다. 사람과 그가 속한 장소는 분리될 수 없는 하나다. “신체가 어떤 자리에 놓인다기보다는, 신체가 바로 자리이다. 신체는 미리 주어진 공간에 위치하지 않는다. 신체는 익명적 존재 속에서 위치화의 사실 자체로부터 출현(irruption)1)”하는 까닭이다. 열린 장소들은 대개는 친교와 공생을 위한 공간들이다.
 
사적 공간을 확보할 수 없는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카페나 살롱, 혹은 그와 유사한 장소들은 더욱 더 필요하다. 근대 이후 일인칭의 신으로 등극한 ‘나’의 생각, 문체, 집필이 무르익는 사적 공간들은 정전들의 공간이다. ‘나’의 여럿 됨으로 만드는 ‘우리’가 한데 어울려 만나는 공간들에서는 문학의 이본들이 만들어진다. 입에서 뱉어져 일회성의 운명을 안고 장엄하게 사멸하는 그 이본들! 담배연기와 같이 공중에서 사라지는 그 이본들은 다만 구전口傳의 대상이 된다. 문인들이 드나들던 공간들은 문학의 저변을 두텁게 한다. 문인들이 단골로 드나드는 찻집, 술집, 카페 등은 많은 일화들을 머금는다. 그 장소들에서 문인 저마다의 독자적인 버릇, 감정, 취향, 기질들이 돌출하고 뒤섞이며 놀라운 화학작용이 일어나는 까닭이다. 화학작용의 결과로 어느 때는 놀라울 만한 밀착이 일어나고, 어느 때는 섬광을 번뜩이고 폭발하며 파편으로 쪼개져 튕겨나간다.


아리스 다방에는 언제나 김종삼이 있다

1970년대 말 광화문에 있는 아리스다방에 가면 거의 틀림없이 김종삼 시인을 만날 수 있었다. 아리스다방 건너편에 있던 동아방송의 촉탁직원으로 일하던 김종삼을 만나서 나는 아리스다방으로 갔다. 원고를 받기 위해서였다. 거기서 나는 소설가 이병주의 실물을 처음으로 보았다. 아리스다방과 지척에 있던 귀거래다방이나 연다방도 1980년대 초까지는 문인들과 쉽게 마주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명동의 은성은 문인들의 단골 막걸리집이다. 은성은 연기자 최불암의 모친이 운영하던 막걸리집이다. 명동백작이라는 별칭을 가진 소설가 이봉구나 전혜린 등이 자주 드나들었다. 전후부터 1970년대 초까지 명동은 문인들이 무시로 드나들던 공간이다. 명동이 금융중심지와 패션을 선도하는 공간으로 바뀌며 젊은 금융인들이 문인들을 명동에서 밀어내고 새 주인이 되었다.
 
명동에서 밀려난 문인들은 종로와 인사동에 새 둥지를 틀었다. 종로에 있던 반쥴, 사슴, 낭만, 그리고 청진동에 있던 항아리 등은 문인들의 단골 술집이었다. 서양 음악을 경청하는 취미를 가진 문인들은 무교동의 르네상스, 명동의 필하모니, 충무로의 티롤을 즐겨 드나들었다. 한창 서양음악 듣기에 몰입해 있던 나 역시 1970년대 중반 무렵부터 이곳들을 출입하며 클래식 음악을 들었다. 내가 티롤에 간 게 1970년대 중반인데, 주인의 말에 따르면 그 직전까지 황석영, 송영, 조해일 등이 단골로 드나들었다고 했다. 서울대 문리대가 동숭동에 있던 시절부터 학림다방은 청년 문사들의 사랑방 구실을 했다. 소설가 김승옥에서 이인성까지 숱한 서울대 문리대 출신의 무수한 청년 문사들이 학림다방을 거쳐나갔다.


반포 치킨의 성자, 김현

그 뒤로 강남에 있던 고선, 반포아파트 인근의 반포치킨, 인사동에 밀집해 있던 평화만들기, 시인학교, 이화, 귀천, 낙원동의 탑골, 홍대 앞의 예술가 등이 한국문학의 사적 담론들이 만들어진 공간으로 등재되어 있다. 나는 고선과 반포치킨에서 우리 비평문학의 거장인 김현을 만나고 그의 자애로운 눈빛과 격려의 말을 들었다. 김현은 가히 반포치킨의 성자였다. 김현은 차라투스트라처럼 외친다. “문학은 써먹을 수 없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억압하지 않는 문학은 억압하는 모든 것에 대해 반성할 수 있게 하며, 억압 없는 사회를 꿈꾸게 해준다.” 김현은 무지몽매한 문학 중생들에게 한국어로 사유하고 한국어로 쓴다는 것의 기쁨과 자긍심을 일깨워주는 선지식이었다.
 
신사동에 있던 고선은 김현의 고선古船이고, 또 그곳의 선장이었다. 김주연, 김치수, 오생근 등의 비평가나 이청준, 김원일, 복거일, 이인성 등의 소설가, 그리고 사학자 정문길, 음악이론가 서우석, 시인 황동규, 정현종, 김광규, 김형영 등이 그 오래된 배에 단골로 승선하는 문인들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그 배 안에서 이루어지는 흥겨운 밤의 연회에는 술과 문학 담론이 화사하게 버무려지며 질펀한 향연이 베풀어졌다. 인사동의 평화만들기에서 신경림을 보고, 다른 시인들과 소설가들, 화가와 영화감독 들을 볼 수 있었다. 평화만들기에는 평화와 자유, 그리고 다정한 예술인의 연대가 있었다. 1980년대 말 인사동 초입에 있던 이화에서 소설가 김주영과 문학저널리스트인 정규웅을 만나고, 요절한 시인 기형도 등과 합류해 술잔을 기울였다. 탑골에서는 자유문인실천협의회에 속한 문단의 요시찰인물, 반체제 인사들과 그들을 따르는 진보진영의 젊은 문인들을 볼 수 있었다. 탑골은 《실천문학》의 실질적인 산실이었다. 홍대 앞 예술가에는 문학과지성사를 구심점으로 그 자장磁場 안에 있는 이인성, 정과리, 홍정선, 성민엽, 권오룡, 채호기, 박혜경, 김동식, 최성실 등이 모습을 나타냈다.


다방은 한국문단사의 이면이다

어떤 장소들은 하나의 숙명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장소는 운명의 근경近景이다. 장소들이 삶을 이끌고 삶을 창조할 때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장소의 철학은 그 장소에 모이는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장소는 그 스스로는 어떤 철학도 낳지 못한다. 장소는 다만 사람을 모을 뿐이다. 장소가 이끌어들인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닌 장소를 운명의 산실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장소는 무無로 가득 찬 백지와 장미꽃의 운명을 내재화한다. 17세기 독일시인 안겔루스 질레지우스는 이렇게 쓴다. “장미에겐 이유가 없다. 꽃이 피어나기 때문에 꽃을 피울 뿐이다. 자기 자신을 아랑곳하지 않고, 누가 자기를 봐주는지 궁금해 하지도 않는다.” 1950년대 한국 문단은 다방 전성시대였다.
 
다방의 미시사微視史에 대한 기술을 빼고 한국문단사는 완성될 수가 없다. 문단의 서식지이자, 교류와 소통이 이루어지는 장소인 다방에서 만남은 물론이거니와 원고의 청탁과 수교, 원고료 지불, 필자 추천 등과 같은 행정적인 일들이 치러졌다. 다방들은 제 방과 사무실을 가질 수 없는 가난한 문인들에게 주어진 낙원인데, 사적 공간들의 결핍으로 인해 번성을 누릴 수 있었다. 모나리자, 금붕어, 돌체, 자연장, 갈채, 대성, 문예살롱, 동방살롱, 문, 서라벌, 서린, 시온, 하루방, 휘가로……들에 문인들이 날마다 모여들었다. 다방은 사랑방의 대용공간이며, 사무실의 변이종變異種으로 나타났다.
 
문인들은 아무 약속이 없어도 다방에 가 앉아 있으면 낯익은 얼굴들을 만날 수가 있었다. 그 다방들은 서로 닮았으면서도 달랐다. 다방들에는 음악, 통음난무, 재기발랄, 유행에 대한 성토, 웃음, 눈물, 실패, 광기, 작은 성공의 기적들, 신경질환들이 부글부글 끓는다. 다방들은 생물체와 마찬가지로 진화하고 번성한다. 다방의 진화는 물론 다방의 유전자 때문은 아니다. 다방은 아무런 유전자도 갖고 있지 않다. 그 다방을 다른 곳들과 차별화하는 것은 거기 모이는 사람들의 기질과 취향과 세계관이다. 장소의 유전자는 사람들의 기질과 취향과 세계관이 만드는 하모니 그 자체일 터다. 진정한 뜻에서 장소들의 진화를 이끄는 것은 시간이다. 그 다른 기질과 취향들이 맞부딪치고 날선 각들이 조금씩 마모되면서 긴 날들로 이어지는 연회의 시간 말이다. 그 연회는 긴 날들의 기억과 이야기를 낳는다. 다방이 사람에게 해탈을 주거나 명철함을 키우게 하지는 않는다. 다방이 가진 미덕은 긴장하지 않아도 좋은 자유와 느긋한 여유, 나른한 이완과 휴식과 낙관주의다.


전봉래와 정운삼, 다방에서 살다 다방에서 죽다

어떤 사람들은 다방이 숙명화한 반정주성反定住性에 참을 수 없는 멀미를 드러낸다. 아직 혼미함에 빠져버린 세계가 개인에게 강제하는 유목의 기질을 기르지 못한 탓이다. 그들은 가변과 유동으로 출렁이는 유목의 게르2)에서 서둘러 영원한 정주定住의 집으로 되돌아간다. 그것은 죽음이다. 도쿄의 프랑스아카데미에서 불어를 공부하고 돌아와 시를 쓰던 전봉래는 피난지 부산의 스타다방에서 치사량의 수면제를 복용하고 정신이 혼미해지자 다방을 나와서 밤 부두를 홀로 걷다가 이튿날 국제시장 근처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전봉래의 자살은 문인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전봉래가 목숨을 끊은 지 여섯 달 만에 또 다른 시인이 밀다원에서 자살하는데, 바로 정운삼이다. 피난지 부산에서 숙명여고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던 정운삼은 전쟁이 안겨준 절망의 하중荷重에 실연의 슬픔이 얹혀지자 더는 견디지 못하고 난파해버린 것이다. 정운삼은 페노발비탈 예순 알과 새콜사나둠 다섯 알을 삼키고 죽음으로 하강해 간다. 그날 밀다원에는 김말봉과 김환기 등이 있었지만 정운삼의 자살을 막지는 못했다. 자살 원인을 두고 문인들이 설왕설래했다. 어디에서 발원한 슬픔과 절망이 그들의 의식을 치명적으로 침윤했을까. 전쟁이 그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보다 더 나쁜 게 있기 때문이다. “무엇에든 싸워야만 한다는 사실보다 더 나쁜 게 있는데, 바로 싸워서 지켜내야 할 그 무엇도 없다는 사실이다.”3) 누추함과 절망과 퇴폐를 강요하는 전후의 패덕이 두 시인을 자살로 몰았을 것이다.
 
전봉래와 정운삼의 죽음은 전쟁의 비참 속에서 존재의 영도零度로 떨어진 문인들 사이에 가벼운 뇌진탕과 같은 충격과 함께 한시적으로나마 정신적 공황증으로 번졌다. 그러나 전쟁 중에는 그마저도 사치였다. 두 시인의 자살은 문인들의 기억 안쪽에 깊이 팬 내면의 상처를 남기고 서둘러 봉합되었다. 그 봉합은 병적인 전율에서 빠른 망각으로 도망가기였다. 죽은 자들을 잊는 것은 언제나 산 자들의 몫이다. 박인환, 이봉구, 이형기, 조영암, 이봉래, 이일, 오상원, 홍사중, 황운헌, 정창범 등은 피난지 부산의 밀다원, 금강, 태백다방 등에 거의 날마다 나와 죽치고 앉아 있곤 했다. 이밖에도 대구의 아담다방과 녹향, 막걸리집 말대가리집과 감나무집 등도 한때 유명했다.


마리서사’, 그 실패한 한국 모더니즘의 산실

방은 사회적 공간의 계열에서 최소단위의 원형이다. 방은 주체의 무수한 기억들과 자아의 공명共鳴들로 채워지고, 마침내 자아와 하나로 겹쳐진다. 방은 자아를 기르고 자아를 방출한다. 방은 기억과 욕망의 누각이다. 방들이 없었다면 방을 잃고 떠도는 자아들도 없었을 것이다. 많은 방들은 정주의 공간이며, 또 한편으로 정주의 일상성에서 낯선 세계에로 탈주하는 범선들이기도 하다. 방은 정주와 탈주의 이항대립적인 욕망을 벽으로 세우고 완성되는 공간이다. 아마 시인 오장환이 운영하던 스무 평 남짓한 서점을 넘겨받아 박인환이 연 서점 ‘마리서사茉莉書肆’가 그럴 것이다. 낙원동에 자리잡은 ‘마리서사’는 낙후된 근대 경험으로 굳어버린 제 의식의 구질구질함을 벗고자 했던 저 댄디보이 박인환의 조급한 욕망과 향서向西 취향과 기질이 빚어낸 공간일 터다.
 
그 욕망의 조급함은 외래어의 남용으로 얼룩진 그의 시들이 증거한다. 박인환의 서양 이해는 계통이 불분명하고 아주 얕은 것이다. 서양 문명과 예술을 향해 뻗치는 그의 욕망은 현저한 모더니즘 지향으로 드러났지만, 센티멘탈리즘이라는 낮은 단계의 심미적 이성 때문에 그의 모더니즘은 정신으로 승화하지 못한 채 표피적 외장外裝으로 떨어진다. 박인환은 “전인민은 일치단결하여 스콜처럼 부서져라 / 국가방위와 인민전선을 위해 피를 뿌려라”(「인도네시아 인민에게 주는 시」)와 같은 시구에서조차 참지 못하고 ‘스콜’이라는 생경한 외래어를 불쑥 내뱉는다. 앙드레 브루통, 폴 엘뤼아르, 장 콕토 등의 외국 현대시인들의 시집과 일본의 유명 시 잡지들을 구비하고 있던 이 서점엔 시인 김광균, 김기림, 오장환, 장만영, 정지용 등과 소설가 이봉구, 김광주, 《신시론》 동인인 김수영, 양병식, 김병욱, 김경린, 그리고 《후반기》 동인인 조향, 이봉래 등이 뻔질나게 드나든다.
 
‘마리서사’에 모인 시인과 화가들은 이성적 선린 관계이기보다는 예술동호인들의 느슨한 우정의 공동체를 이룬다. 그들은 토속과 전근대에 대한 혐오감에서 촉발한 모더니즘에의 유혹에 공명했지만, 그 성과는 보잘것없었다. 조향이나 이봉래 등이 드러내 보인 시적 실험의 조악함은 참혹하다. 박인환은 전방위적 예술인 장 콕토를 선망하고, 위스턴 오든이나 스티브 스펜더의 시적 지향을 따르고자 했다. 그러나 그 역시 기질과 취향의 전면적 혁명으로 나가지 못하고 겨우 겉치레의 흉내에 머물고 말았기에 그 모더니즘의 실험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실패는 곧 1950년대 한국 모더니즘 예술의 실패다. 그 박래적인 것에 대한 유혹에서 당당하지 못하고 이국 선망과 조급한 모방으로 버무린 시들을 양산하는 형태로 비루함을 드러냈다. 김수영이 훗날 「마리서사」에서 떨어져 나와 박인환을 대놓고 욕하며 독자 노선을 모색한 것도 그 겉멋만을 취하는 비루함에 대한 지독한 경멸과 반발이었다.
 
김수영은 이렇게 쓴다.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 나는 인제 녹슨 펜과 뼈와 광기 ― / 실망의 가벼움을 재산으로 삼을 줄 안다 / 이 가벼움 혹시나 역사일지도 모르는 / 이 가벼움을 나는 나의 재산으로 삼았다”(김수영, 「그 방을 생각하며」)4) 시인은 세계를 개조하고 뒤집는 대신에, 그 위대한 꿈이 무산하는 슬픔과 실망을 제 자아의 거푸집을 바꾸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자 한다. 그것은 진정한 위안이 되지 못한다. 남은 것은 “실망의 가벼움”뿐이다. 왜? 방은 혁명의 동력을 스스로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피의 분출도, 땀의 끈기도 없이 다만 사물화되는 방은 희박해진 정신적 상태, 즉 자아의 데드마스크다. 그래서 실망의 가벼움만으로 채워진 방에는 “녹슨 펜과 뼈와 광기”만이 있다. 어쨌든 ‘마리서사’는 해방 직후부터 1950년대 초반까지 번성하던, 그러나 높은 경지에 오르는 데 실패한 한국 모더니즘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다.

1) 에마뉘엘 레비나스, '존재에서 존재자로', 서동욱 옮김, 민음사, 2003
2) 게르ger는 몽골어로 중앙아시아 유목민이 사는 천막 같은 집을 가리킨다. 유르트yurta라고도 하고 파오라고도 한다. 한 가운데 나무막대를 세운 뒤 가죽이나 펠트, 밝은색의 수직물로 덮어 지붕을 삼은 유목민의 집을 말한다. 가축을 방목하는 목초지를 따라 이동하는 유목민들이 말이나 마차로 간편하게 운반할 수 있게 가벼운 소재로 만든 이동식 가옥이다.
3) 베르트랑 베르줄리, '슬픈 날들의 철학', 성귀수 옮김, 개마고원, 2007
4) 김수영시집, '거대한 뿌리', 민음사, 1974

장석주   1975년 《월간문학》 신인상과 1979년 《조선일보》에 시 당선으로 등단. 시집 '햇빛사냥' '완전주의자의 꿈' '어둠에 바친다' '절벽' 등 다수 있음. 평론집과 산문집, 장편소설 등 출간.

 

장석주 시인의 글 이외에도 시인세계에 실린 관련 기사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문화저널 21에 가시면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기사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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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리부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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